작가 하지원을 만나다.

작가로서 첫무대에 오른 하지원작가를 만나다

한창 볕도 좋고 날도 좋은 5월. 성수동에 위치한 한 건물,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에 내리면 심장을 뛰게 하는 듯한 강한 비트의 음악이 비좁은 복도 사이를 뚫고 전해진다.

신발 벗고 전시장 안으로 한 걸음 들어선다. 맨발을 딛기가 망설여 질 정도로 먼지 한톨 없이 모든 빛을 반사하는 듯한 우윳빛의 투명한 바닥이 반짝인다. 공간을 가득 채우는 은은하고 세련된 향기에 이끌리듯 어느 새 첫 작품과 마주 선다.

설명이 필요없는 배우 하지원이 첫 개인전을 열었다. ‘관계의 시작, 그 찰나’라는 제목으로 소속사가 위치하고 있는 성수동 건물의 5층과 6층을 갤러리로 임시 변경, 4월 21일부터 5월 20일까지 한 달간 전시를 하고 있다.

전시장에 가서 운좋게도 하지원 아니 작가의 큐레이팅을 들으면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관계의 시작, 그 찰나 Photo by 월간에디션

관계의 시작, 그 찰나 @Photo by 월간에디션

하지원은 이번 전시를 ‘관계의 시작, 그 찰나’라고 이름지었는데 디지털 세계에서의 익명성과 인간관계를 표한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 전시 중인 대다수의 그림들이 아름다운 선과 컬러로 구성되어 있지만 특정 얼굴은 없다.

거기에 손가락, 발가락 등이 세 개인 그림, 네 개인 그림. 틀을 깨고 편견을 걷어 버리겠다는 작가의 의도가 표현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전시장을 마음대로 구성할 수 있었기에 할 수 있는 선택이었던 맨발 관람. 하지원은 영화, 드라마 등 고도의 연출로 완성되어가는 작품에서 배우로 활동해서 전시 자체를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디자인해 기획했다.

맨발 전시도 전시 장의 편의를 고려한 것이 아니라 관람자들이 오롯이 음악의 비트와 향기 그리고 심지어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촉감까지 오감으로 작품을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라고. 주어진 배역에 몰입하기 위해 온통 환경을 새로운 인물의 환경으로 만들어 연기하는 타고난 배우의 배려가 아닐 수 없다.

항상 주어진 대본에 작가와 감독들이 마련한 무대에서 연기를 하며 공동작업을 해왔던 자신만의 이야기, 자신만의 생각을 하지원은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왔었다.

그러다 4년 전부터 몰입해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고 하는데, 사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그리거나 라디오 같은 소형 가전을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거나 하는 식의 놀이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그림을 시작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버추얼 비너스, 즉 가상의 여신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그 시작이 되었던 첫 작품을 우연히 그리게 되었고 디지털 세계의 복잡한 관계속에서도 하지원 특유의 긍정성과 밝은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키치한 컬러들을 사용했다.

버추얼 비너스 첫 작업 @Photo by 월간에디션

특이하게도 대부분의 작업들은 유화캔버스가 아닌 우드 판에 유화로 되어 있는데, 작업중 일화와 관계 있다. 어느 날 작업을 하던 중 캔버스 위의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아 찢어내었는데 그만 더 이상 캔버스가 없어 캔버스를 받치고 있던 우드 판이 드러났고 어쩔 수 없이 우드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우드 판을 덮고 있는 또 하나의 표면을 벗겨낼 수 있었고 자신의 작품의 성격과도 맞는 의미라 우드판 작업을 시작했다. 그림의 느낌도 나쁘지 않았다.

작품의 수가 많지 않기에 충분히 공간을 느끼고 예상치 못한 작가의 큐레이션도 들었으니 좁은 계단을 통해 5층으로 내려간다.

Photo by 월간에디션

5층에는 작지만 하지원의 선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약간의 크로키 작품들이있어 눈요기가 되어 준다.

5층에서는 분위기가 다른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특히 설치물이 있어 단순히 회화 화가로서의 하지원이 아니라 종합 예술가로서의 하지원의 면모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Photo by 월간에디션

운 좋으면 아름다운 배우의 친절한 설명까지 들을 수 있는 하지원의 ‘관계의 시작, 그 찰나’ 전시. 당신이 팬이라면 너무 좋은 기회일 것이고 팬이 아니라도 작가 하지원, 자연인 하지원을만나볼 수 있는 기회이다.

자료 보충을 위해 다시 한번 찾아간 전시. 전시 공간에는 아무도 없었고 나만 홀로 오롯이 즐기고 있을 때, 다시 한번 하지원을 만날 수 있었다.

@Photo by 월간에디션

배우로서 무언가를 시작한다면 이미 20-30은 먹고 들어가는 샘인데, 미술작가로서 시작한다는 것은 오히려 마이너스에서 출발하는 것이라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하는 하지원.

​하지만 그림만 놓고 보자면 배우 하지원은 온데간데 없고 오로지 버추얼 비너스들만이 가득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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